[병원人, 정년을 맞다] 일산백병원 이만재 국장  
- ‘33년간 원무·관리부장·사무국장 역임’ 병원 행정업무 진두지휘   
- 상계백병원 · 일산백병원 개원멤버 참여 ‘초기 병원 행정 기틀 마련’ 공헌 
- 진료협력센터 구축·의료분쟁 해결 등 병원발전 헌신  

 


일산백병원에서 ‘정년(停年)’을 맞은 분들은 병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증인’이며, 백병원 성장에 빼놓을 수 없는 '주역' 중 한 분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했던가. 수십 년간 백병원에서 일했던 ‘한분한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이것이 진짜 백병원의 역사가 아닐까. 정년을 맞은 일산백병원 교직원들의 이야기를 담는 이유다.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이만재 국장이 ‘정년’을 맞았다. 2022년 8월 말을 끝으로 백병원을 떠난다. 이만재 국장은 33년간 백병원에서 일했다. 그간 원무부장과 관리부장, 사무국장의 역할을 맡아 병원 행정을 진두지휘했다.   

상계백병원과 일산백병원 두 병원의 개원 멤버로 참여해 병원 개원 초기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병원 행정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공헌했다. 또 33년간 다양한 의료분쟁 해결과 진료협력센터를 구축하는 등 병원 발전에 노력했다. 

이만재 국장은 백병원 역사와 병원 발전에 빼놓을 수 없는 주역 중 한 명이 분명하다. 이만재 국장에게 그간의 병원 이야기와 퇴임 소회를 들어봤다.


Q. 정년퇴임을 앞둔 지금의 소회가 어떠신가요?

백병원에서 근무한 기간이 33년입니다. 일산백병원에만 22년이네요. 세월이 참 빠릅니다. 22년 전 여름, 지하층 기초공사를 할 때부터 상계와 일산을 오가며 개원 준비를 했습니다. 지금도 증축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노병은 떠나도 일산백병원의 발전은 계속된다’란 느낌이 듭니다.

 


Q. 백병원에 언제, 어떤 계기로 입사하셨나요? 

1989년 7월 상계백병원이 개원하면서 직원을 모집할 때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보건학을 전공하면서 학군사관후보생(ROTC) 과정을 마쳤습니다. 그 덕분에 1984년 의무행정장교로 임관할 수 있었고, 그 후 복무기간을 3년 연장하여 5년 4개월간 야전병원과 사단의무대에서 근무했습니다. 대학 전공과 의무행정장교 경험을 살려 일하고 싶었는데, 전역하면서 때마침 개원하는 상계백병원에 지원하여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Q. 백병원에 입사하고 지금까지 어떤 업무들을 하셨나요? 

1989년 상계백병원에 입사하여 처음에는 원무과 의료보험 담당과 서무업무를 맡았습니다. 진료비를 청구하고 업무기준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역할을 주로 했습니다. 그 후 10년이지나 개원하는 일산백병원의 원무과장으로 전보되었습니다.

개원 병원의 원무과장이 되어 상계백병원 시절처럼 주로 업무기준과 시스템을 구축하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5년이 지난 후 관리부장으로 전보되어 장비를 구매하고 관리(유지보수계약 등)하는 업무를 총괄하며 10년간 근무했습니다. 2012년 서울백병원 관리부장이 공석이 되어 5개월간 서울백병원에서도 근무한 경험도 있습니다.
 
이후 2013년 3월 일산백병원 사무국장으로 보임되어 8년 6개월간 일산백병원의 행정업무를 총괄했습니다. 세어보니 백병원에서 만 33년간 근무를 했네요.

 


Q. 그간 일하면서, 어떤 신조를 지니고 일하셨나요? 어떻게 무탈 없이 정년을 맞이할 수 있었나요? 

두 가지만 소개하자면 첫째는 ‘기본과 원칙에 충실하자’입니다. 둘째는, ‘모든 업무는 나의 일처럼 처리하자’라는 신조로 근무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원로 원장님께서 일러 주신 ‘주인정신’입니다. 그 신조 덕분에 어려운 일에 부딪혀도 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었고, 비교적 후회하는 일이 적었습니다. 그 덕분에 무탈하게 정년을 맞이한 게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Q. 일하면서 가장 보람됐던 점은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상계백병원과 일산백병원의 개원멤버로 일했던 기억입니다.
 
1989년 7월 1일 상계백병원이 개원하는 날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민간병원에 근무한 경험이나 의료보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지만, 의료보험업무를 맡아 단 1개월도 진료비 청구가 지체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10년 후 1999년 12월 10일 일산백병원이 개원할 때 원무과장을 맡아 다음 달 1월부터 ‘의약분업’ 첫해를 맞이하면서도 진료비 청구가 전혀 지체되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선배님들과 동료들이 함께 이뤄낸 성과로서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제 정년퇴직을 하게 되니 함께 노력했던 그분들이 더욱 생각납니다.

 


두 번째는 33년간 근무하는 동안 많은 의료분쟁 해결을 위해 앞장섰던 일들이 기억납니다. 지금은 거의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의료분쟁이 제법 많았고 수습하기 버거울 만큼 힘들었던 분쟁들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분쟁들이 잘 해결될 때마다 보람을 느꼈습니다.
 
세 번째는 상계백병원의 진료의뢰회송센터(지금의 진료협력센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입니다. 서울 여러 대학병원을 벤치마킹하고 병원 소개책자와 진료의뢰서 서식을 만들어 5개 구(노원, 도봉, 강북, 중랑, 동대문) 병·의원을 돌며 홍보하였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일산백병원에서도 이어져, 2014년도에 파주 운정지역과 김포한강신도시 지역에 있는 병·의원을 빠짐없이 방문하며 우리병원을 홍보한 것이 기억납니다.

네 번째는 방사선종양학과의 선형가속기를 도입하던 일입니다. 그때는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금융위기 직후라서 은행 대출금리가 9%를 넘었습니다. 초도 견적가 450만 불(약 60억)짜리 견적서를 받았습니다. 비용절감을 하기 위해 장비회사(HDX)대표를 3번이나 찾아가서 장비가격을 낮춰 달라고 간청하였고, 결국 295만 불로 매입(공동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삼고초려를 했던 노력이 보람으로 남습니다.

 


Q. 일산백병원에 처음 오셨을 때 상황은 어떠했나요?

일산백병원은 IMF 외환위기를 힘겹게 극복하면서 1999년 12월 10일 진료개시를 하였습니다. 그 시기에는 대출금리가 매우 높아서 건축비용이 몹시 부담스러웠지요. 그래서 하루빨리 진료를 시작하고 진료비 청구를 단 하루도 늦출 수 없는 힘겨운 상황이었습니다.

1년이나 먼저 공사를 시작한 공단 일산병원이나 국립암센터보다 우리가 먼저 개원하였으니, 그때 재단이나 개원추진본부 그리고 개원멤버들의 노력은 대단하였습니다.

또한 2000년으로 넘어가면서 컴퓨터 프로그램 오류(Y2K)가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기억도 납니다. 다행히 큰 문제없이 21세기를 맞이할 수 있었지요.

직원들이 수납창구용 PC 도난을 막기 위해 한겨울에 밤새워 지켰던 일들도 생각나고, 원무업무 경력자가 부족하여 보건대학 졸업예정자들을 선발하여 2개월간 매일 시험을 치르며 오픈준비를 했던 일도 기억이 납니다.
 
개인적으로는 서울과 일산을 오가며 오픈준비를 하면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으니 1년 동안 거의 매일 밤 11시에 귀가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개원 초기에 다들 힘겨운 상황이었지만 대부분의 부서장들이 서울·상계, 부산지역에서 열정과 지식이 풍부한 차석들이 오셔서 비교적 빠르게 병원이 안정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일산백병원이 계속 발전하기 위해선 앞으로 어떤 게 더 개선돼야 하나요?

일산백병원은 주변에 있는 종합병원들 보다 좁은 공간과 부족한 재정을 극복하고 지난 23년간 2차례나 증축을 하였습니다. 지금 3번째 증축을 하고 있으니 정말 놀라운 발전을 했다고 봅니다.

그런 일산백병원이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분야에서 서비스의 수준을 높이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기 서·북부지역에서 1등 병원이 목표이고, 그런 비전을 달성하려면 의료서비스 질과 진료환경이 최고라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10년 후쯤 운정지역에 들어설 예정인 아주대학교 파주병원을 고려한다면 지금부터 불편한 이미지를 털어내고, 지역주민들로부터 1등 병원으로 인정받으려는 노력이 꾸준하게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바람직한 직장문화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지역 내 1등 병원이 목표라면 내부고객 만족도도 그에 걸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일산백병원 가족 모두가 진정한 1등 병원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고, 시너지효과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Q. 퇴직하고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정년을 마쳤으니 당분간은 운동과 여행을 하면서 인생 2막에 적당한 직업을 찾아볼 계획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해보고 싶었던 취미에 더 관심을 가져볼 생각입니다. 그러다가 직업을 갖게 되더라도, 병원 행정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은데, 잘될지는 모르겠습니다. 

Q. 일산백병원을 떠나면서 백병원 가족들에게 남기실 말씀은?

떠나면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일산백병원이 계속 발전하여 지역주민 모두가 인정하는 지역 최고의 병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젊은 시절 20년 넘도록 동고동락했던 후배들이 멋진 직장을 다니는 모습을 보면 정말 흐뭇할 것 같습니다. 아마 퇴직하신 선배님들도 모두 같은 심정일 겁니다.

저는 33년간 백병원에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무사히 정년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서진수 원장님과 이성순 원장님 그리고 환자들을 성심껏 진료해 주신 교수님들, 병원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협조했던 모든 교직원과 협력업체 직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개원하면서부터 동고동락한 원무부 직원들과 10년 동안 함께 한 관리부 직원들, 그리고 저의 부족함을 많이 이해해 주시고 도움을 아끼지 않으신 부서장님들께도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글(정리),사진: 일산백병원 홍보실 송낙중

[병원人, 정년을 맞다] 일산백병원 영상의학과 차순주 교수
- 32년간 ‘복부초음파 검사 6만명 · 펫시티(PET-CT)는 1만건 · 감마촬영 판독 2만건’ 시행
- PACS 도입 주역, 세계 최초 ‘필름 없는 병원’을 만들다!


일산백병원에서 ‘정년(停年)’을 맞은 분들은 병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증인’이며, 백병원 성장에 빼놓을 수 없는 '주역' 중 한 분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했던가. 수십 년간 백병원에서 일했던 ‘한분한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이것이 진짜 백병원의 역사가 아닐까. 정년을 맞은 일산백병원 교직원들의 이야기를 담는 이유다.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영상의학과 차순주 교수가 ‘정년’을 맞았다. 차순주 교수의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인 백병원. 1990년 3월 상계백병원 영상의학과 전임강사로 임용돼 1999년 일산백병원 개원멤버로 합류했다.

차순주 교수는 32년간 수많은 환자의 검사와 영상을 판독했다. 복부초음파 검사만 6만 명가량 시행했다. 펫 시티(PET-CT)는 1만 건, 감마촬영 판독은 2만 건이 넘는다.

무엇보다 차순주 교수는 일산백병원에 세계 최초로 ‘필름 없는 병원’을 만든 주역이다. 일산백병원 설립 당시, 차순주 교수가 주도해 수많은 회의와 연구 끝에 성공적으로 PACS(의료영상 전달 및 저장 시스템)를 도입했다.

차순주 교수는 일산백병원 역사와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역 중 한 명이 분명하다. 차순주 교수에게 그간의 병원 이야기와 퇴임 소회를 들어봤다.


Q. 정년퇴임을 앞둔 지금의 소회가 어떠신가요?

아쉬움과 안도의 마음이 교차합니다. 의사와 교수로서 좀 더 열심히 노력해 학문적 성과를 이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동안 ‘내가 의사와 교수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왔나’란 질문들도 내 자신에게 던져보곤 합니다.

한편으로는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을 별 탈 없이 마감할 수 있게 되어 안도감이 듭니다.


Q. 의사란 직업을 선택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뚜렷한 계기가 될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어렸을 적 막연하게 아픈 사람을 돕겠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장래 희망을 의사로 정한 게 중학교쯤 된 것 같네요.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사진찍기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한때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으로 할까 잠시 고민 한 적도 있을 정도로 사진에 푹 빠져 지냈습니다.

본과 3학년 진단방사선과(현재 영상의학과)에서 실습할 때 목적만 다를 뿐 엑스선도 하나의 사진으로 보여, 무척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학생치고는 병의 위치(병소)를 찾는데 남다른 소질을 보여, 당시 교수님께서 영상의학과를 꼭 하라고 권하게 되어 마음을 굳혔습니다.

1980년대 진단방사선과는 메이저 과에 비해 전공의들에게 인기가 적었습니다. 이제 막 CT와 초음파검사 기기가 도입될 정도로 진단영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지금처럼 크지 않았지만, 당시도 발전 속도는 타과에 비해 빠른 편이었습니다.


Q. 교수님의 약력과 경력 등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1982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습니다. 1986년 고려대학교 혜화병원, 지금의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진단방사선과 전공의를 수료하고 전문의를 취득하였습니다.

1994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박사를 받고, 1996년에는 미국 애틀란타 에모리대학 교환교수로 1년간 유학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대한의학영상정보학회 회장을 맡은 경험도 있습니다.

[사진] 일산백병원 퇴임기념 영상의학과 교직원 단체사진(2022년 8월 2일)


Q. 백병원에서 언제부터 일하셨나요? 일산백병원에 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1990년 3월 상계백병원 영상의학과 전임강사로 임용되면서, 백병원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입사 계기는 모교 교수님의 소개로 알게 된 당시 서울백병원 과장님이신 한창렬 교수님의 추천으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일산백병원과 인연을 맺은 건 1999년 12월 일산백병원이 개원하면서, 초창기 멤버로 합류했습니다.

저는 평소 컴퓨터 관련된 디지털 영상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PACS(의료영상 전달 및 저장 시스템)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일산백병원 PACS 설치에 개원 전부터 계획과 도입에 관여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일산백병원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이후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일산백병원 영상의학과 과장,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인제대학교 의료영상연구소 소장을 맡아 일했습니다.


Q. 교수님이 지금까지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전문분야가 무엇인가요?

임용 후 복부영상학을 전공으로 했습니다. 당시는 인터벤션(Interventioan)이 분리되어 있지 않아, 간색전 등과 같은 인터벤션도 겸했습니다.

2010년 일산백병원에 PET-CT 장비가 들어오면서, 동위원소 특수면허가 제가 핵의학실로 근무지를 옮겼습니다. 당시 핵의학과 의사를 모시기 어려워, 한시적으로 맡았는데 12년이 흘러 지난 3월에야 다시 영상의학과 복부전공으로 되돌아오게 되었습니다.

※ 인터벤션 영상의학이란 혈관 안에 얇은 카테터(의료용 도관)를 넣어 영상 장비로 확인하면서 치료하는 시술을 말한다.


Q. 그동안 얼마나 많은 판독을 해오셨나요?

많은 일을 한 부분이 복부 초음파 검사입니다. 해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습니다. 평균 주 2회 하루 20건 정도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1년에 2천 건으로 계산하면, 30년이니 6만 건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다음은 복부 CT와 일반촬영, 위장촬영과 핵의학 검사판독이 있는데, 정확한 산출이 쉽지 않습니다. 지난 12년 판독했던 PET CT는 1만 건이 넘을 것 같고, 다른 감마촬영 판독은 2만 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Q. 판독해오면서 자신만의 신조나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입사 후 세운 목표가 “이삭 줍는 농부의 마음으로 일하자”였습니다. 모이면 소중한 낱알을 흘려 버리지 않는 것처럼, 중요치 않은 판독 소견도 항상 예의 주시하자는 뜻입니다.

나이가 들어 좀 더 현실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의학과 의사는 환자보다는 의사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게 되는데, 서비스 소비자인 진료의사에게 필요한 정보를 간단명료하게 제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상의사가 필요한 시간에 맞춘 간략한 판독이 완성도 높은 늦은 판독보다 더 유용하다고 보기 때문에 가능한 빠른 회신을 제공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Q. 일하면서 가장 보람되거나,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일산백병원 설립계획이 확정되면서 그동안 연구해왔던 PACS(의료영상 전달 및 저장 시스템)의 성공적인 도입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PACS 도입계획이 확정되고, 계발업체와 수많은 회의와 연구를 하며, 세계 최초의 필름 없는 영상의학과를 가진 병원으로 개원하게 된 점이 가장 생각나고 보람이 있었습니다.


Q. 인생 후반전이 이제 시작됩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일단 우리 과 인력난 때문에 계속 근무를 해야 할 듯합니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정도 생각하고 있고, 대신 시간을 좀 더 내서 그동안 잘하지 못했던 취미 생활인 사진 활동을 좀 더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사진] 2022년 6월 30일 소노캄고양호텔에서 열린 일산백병원 교수협의회 모임에서 류지윤 회장이 정년퇴임 기념패를 전달했다.

[사진] 서정욱 영상의학과 책임교수(오른쪽)가 8월 2일 차순주 교수에게 공로패를 전달했다.
[사진] 전충구 영상의학과 실장(오른쪽)이 차순주 교수에게 8월 2일 영상의학과 직원 대표로 감사패를 전달했다.

[병원人, 정년을 맞다] 일산백병원 정형외과 서정국 교수 

31년간 '외래환자 1만명 · 수술환자 3천여명' 치유 

 

일산백병원에서 ‘정년(停年)’을 맞은 분들은 병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증인’이며, 백병원 성장에 빼놓을 수 없는 ‘고마운 은인’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했던가. 수십 년간 백병원에서 일했던 ‘한분한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이것이 진짜 백병원의 역사가 아닐까.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정형외과 서정국 교수가 ‘정년’을 맞았다. 2022년 2월 말을 끝으로 일산백병원을 떠난다. 서정국 교수는 31년간 백병원에서 환자를 돌봤다. 1987년 서울백병원 전공의를 거쳐, 1991년 서울백병원 교수로 부임했다. 30년 간 서울백병원에서 진료를 해오다 2021년 4월에 일산백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31년간 서정국 교수는 수많은 환자를 돌봤다. 외래환자 1만 명, 허리 수술 환자 3천 여명 가량 서정국 교수가 치유했다. 서정국 교수는 백병원 역사와 발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주역 중 한 명이 분명하다. 서정국 교수의 마지막 진료현장에서 그간의 병원 이야기와 퇴임 소회를 들어봤다.

 


Q. 정년퇴임을 앞둔 지금의 소회가 어떠신가요?

 

막상 제가 정년퇴직을 한다는 사실이 아직 와 닺지 않습니다. “아직 젊은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나이가 되었나? 세상 참 빠르구나.” 새삼 느끼는 요즘입니다. 

 

Q. 의사란 직업을 선택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특히, 정형외과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오래전 작고하신 모친께서 서울여자의과전문대학(우석의대 전신, 현재 고대의대)에 다니시다, 중도에 피치 못할 개인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하셨습니다. 그 후 의사가 되지 못한 안타까운 마음이 저를 의과대학으로 자연스럽게 인도하신 것 같습니다.

 

정형외과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제가 의과대학 실습이나 인턴 시절 경험 했던 정형외과는 모든 다양한 외상 치료를 하는 역동적인 분야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활동적이고 의욕이 있는 의사라면 누구나 도전해 보고 싶은 ‘과’이며 저에게 그 기회가 주어 졌던 것이고 저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Q.  백병원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1987년 초, 군의관을 마칠 무렵 전공의 지원을 알아보던 중 우연히 서울백병원 정형외과에 자리가 있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초일류 병원이었던 서울백병원에서 가장 인기 높은 ‘과’ 중 하나인 정형외과 전공의에 지원해 합격하게 되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Q. 백병원에서 얼마나 일하셨나요? 일산백병원에 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1987년 서울백병원 전공의로 정형외과에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1991년 서울백병원 교원이 되고 그 이후 약 30여 년 간을 근무하다, 2021년 4월부터 일산백병원으로 옮겨 이제 정년을 맞이하였습니다.

 

제가 처음 근무를 시작했던 당시, 서울백병원의 위상과 활약은 너무도 빛났으며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작은 본관 하나로 600명가량의 입원 환자와 매일 40~50개의 수술을 했습니다. 말 그대로 ‘전성시대’를 누리며, 상계백병원과 일산백병원을 증축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그 후 도심 외곽 지역의 대형 병원들이 들어서고, 도심 공동화 현상도 심해져 병원 규모가 축소되면서 일산백병원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작년 4월에 이곳 일산백병원에 부임하였으며, 제가 낯선 환경과 분위기에 불편하지 않도록 많은 배려와 도움을 주신 이성순 원장님 이하 교직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특히 정형외과 가족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Q. 그동안 병원에서 진료와 수술을 하면서 자신만의 신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는 정형외과 분야 중 척추를 전공하였습니다. 특히 척추 수술은 환자에게 꼭 필요하며, 수술 후 결과가 확실히 좋아진다는 확신이 있을 때만 시행해야 합니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충분한 설명과 동의를 얻은 후 해야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의사 자신이 수술 후 결과를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의 실적이나 경험을 위해 환자를 실험 대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치료에 자신 없다면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같이, 치료를 잘하는 병원이나 의사에게 환자를 소개하는 것을 망설이면 안 됩니다. 무리한 치료가 환자뿐 아니고 의사 자신에게도 치명적인 나쁜 결과와 어두운 미래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Q. 백병원에 처음 부임했을 때와 지금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제가 백병원에서 근무했던 기간 동안, 세상이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니 모든 검사와, 처방, 진료기록지들을 실제 종이에 기입하여 풀로 붙여 보관하였습니다. 초음파, CT, MRI 등이 도입되기 전이라 모두 방사선 사진에 의존하고 필름으로 현상하여 판독 및 보관을 하였습니다. 논문 작성도 일일이 원고지에 만년필로 작성하며 사진을 오려 붙이던 시기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현재와 같은 최신 첨단 장비 및 설비, 전산화 등은 공상 소설에나 나올 법한 먼 미래의 이야기였습니다. 

 

 

Q. 일하면서 가장 보람되거나, 반대로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의사는 항상 환자를 치료해야 되는데, 환자를 절대로 하나의 인격체를 갖고 있는 인간으로 마치 가족으로 생각하고 치료를 해야 됩니다.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거나 쓸데없는 객기 또는 실적 올리는 대상으로 접근하면 그 의사의 의료인으로 서의 존재 가치는 없어질 것입니다.

 

Q. 인생 후반전이 이제 시작됩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습니다. 노령인구의 증가 및 국민 건강 향상 때문인지, 저 자신도 아직은 쉬기에는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그동안 백병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로서 아픈 환자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여건을 찾아보겠습니다.

 

[사진] 이성순 일산백병원 원장이 2022년 2월 8일 병원 연석회의에서 서정국 교수에게 인제대 총장 공로패와 이성순 원장 공로패, 황금열쇠를 전달했다.  

 

 

Q. 일산백병원을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씀은?

 

세월이 지나다 보니 1987년부터 현재까지 제 인생의 반 이상을 보내왔던 백병원입니다. 저를 받아주고 키워주고, 오늘날까지 보살펴 준 백병원에 감사드립니다.

일산백병원 및 다른 모든 인제학원과 가족분들의 발전과 영광이 있기를 항상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사진: 일산백병원 홍보실 송낙중

[병원人, 정년을 맞다] 일산백병원 영상의학과 방사선사 윤종일 차장

윤종일 선생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일산백병원 영상의학과 윤종일 차장이 ‘정년’을 맞았다. 올해 8월 말을 끝으로 백병원을 떠난다. 윤종일 차장은 35년간 백병원에서 일했다. 서울백병원에 입사해 1999년 일산백병원 개원 때 병원을 옮겼다. 그는 일산백병원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산증인’이며, 백병원 성장에 빼놓을 수 없는 ‘고마운 은인’이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했던가. 

 

그는 인터뷰 요청에 손사래를 쳤지만, 수십 년간 백병원에서 일했던 ‘한분한분’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이것이 진짜 백병원의 역사가 아닐까.

  

마지막 출근을 앞둔 윤종일 차장에게 그간의 병원 이야기와 퇴임 소회를 들어봤다.   

 

 

Q. 정년퇴임을 앞둔 지금의 소회가 어떠신가요?

 

먼저 오늘이 있기까지 저를 뒷바라지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합니다. 이성순 원장님을 비롯한 제2의 가족과도 같은 일산백병원 식구들의 격려와 배려, 도움 덕분에 무사히 업무를 마치고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군대 제대 후 한 달 만에 서울백병원에 입사해 35년간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진료지원부서의 일원으로서 나름대로 주어진 업무에 최선을 다하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그렇듯, 지나온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마음 한구석으로 허전하기도 하고, 아쉬운 마음과 함께 주마등처럼 예전의 기억들과 장면들을 떠올리며 격세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Q. 언제 어떻게 입사를 하셨나요? 병원의 영상의학 방사선사란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합니다. 지금처럼 취업 정보 사이트가 없던 시절 우연한 계기로 백병원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1986년 3월 20일 군 복무 마치고 학교 동문 회장님께 우연히 인사차 갔다가 서울백병원 인력 채용 정보를 듣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고교 졸업 후 원래 희망이 외국어 어문계열에 진학하고자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아, 나름 진로에 대한 고민 중 집에 있던 의료관련 백과사전을 가끔 봤던 기억으로 ‘의료 방사선학’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이 직업을 선택한 계기입니다. 

 

 

Q. 백병원에서 얼마나 일하셨나요? 일산백병원에 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1986년 서울백병원으로 입사했습니다. 정확하게 35년 3개월 일했으니, 참 오래됐네요.(웃음) 일산백병원은 1999년 개원 멤버로 지원해 발탁되었습니다. 환경적으로나 업무적으로 좀 더 규모가 크고 현대식 병원에서 근무를 희망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Q. 입사하고 지금까지 어떤 업무들을 하셨나요? 

 

영상의학의 각 분야에 걸쳐 다양한 업무와 경험을 했습니다. 일반촬영부터, CT실, MRI실, 중재적 시술실, 수술실 씨암(C-arm), 심장혈관촬영실, 핵의학실, 투시실, 검진센터 등 지금 기억해 보니 참 여러 곳에서 일을 했네요.(웃음) 

일산백병원에서는 핵의학 영상검사, 방사선 안전관리 업무와 영상의학과 부서장(14.3.1~19.2.28) 업무를 수행 했습니다.

 

 

Q. 병원 일을 하면서 자신만의 신조나 신념이 있나요? 

 

병원 업무 특성상, 몸이 불편한 분들을 접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특히, 영상의학과 업무는 환자와 직접 접촉하는 부서로, 검사 결과를 제공하는 환자 접점 부서입니다. 늘 먼저 환자 측면에 생각해보고 가능한 검사 전에 충분한 설명을 해드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친절하고 밝은 미소, 편안함을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자세로 업무에 임해왔습니다.  

 

Q. 일산백병원에 처음 왔을 때 상황은 어떠했나요? 

 

1999년도 서울백병원에서 전임 부서장을 포함해 5명, 부산백병원 1명, 상계백병원에서 1명, 총 7명이 일산백병원 개원 선발대로 구성됐습니다. 1999년 10월 20일경 출근했을 때는 아직 건물 시설 건축도 완공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영상의학과는 겨우 기본 구획 형태만 갖추고 있었습니다. 의료 장비 반입도 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선발대는 매일 목재 합판을 시멘트 바닥 위에 놓고 준비한 전기장판을 깔고 숙식을 해결했었습니다. 

 

잊지 못할 기억은 제가 근무할 곳인 지하 4층 핵의학실을 둘러보러 가던 중 임시로 설치한 백열전구가 합선되어 ‘뻥뻥’ 소리와 함께 주위가 암흑으로 변해 병원을 탈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만 해도 짓다 만 건물 공사장처럼 임시로 계단 철제 난간에 전선을 연결해 듬성듬성 전구를 설치해 놓았는데, 위층에서 샌 물에 합선되었던 거 같습니다.

 

그렇게 일산백병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시기가 지나 영상의학과는 최신 의료기기를 속속 도입하는 한편, 국내 최초의 영상저장 및 전송시스템(Full Pacs)구축과 운영을 시도하면서 국내 굴지의 병원으로부터 많은 관심과 여러 번의 연수교육, 운영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외부로부터의 영상의학과에 견학 온 사례가 많았습니다.  

 

[사진] 이성순 일산백병원 원장이 2021년 8월 3일 병원 전체 연석회의에서, 정년을 기념해 윤종일 차장에게 감사패와 황금열쇠를 전달했다.  

  

Q. 일산백병원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발전되었다고 느끼시나요?

 

개원 초를 돌이켜 보면 전 직원들이 개원 창립 멤버의 자긍심과 능동적인 의욕과 열정으로 빠른 시간에 정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후에도 원장님과 중간 관리자를 중심으로 전 직원이 똘똘 뭉쳐 환자 편의성 제공과 진료의 질을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도 일산 지역의 의료중심의 메카로서 백병원 명성에 걸맞은 고양시 최고의 대학병원으로 손색없는 정상궤도에 서 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도 현재 추진 중인 2차 병원 증축 공사로 좀 더 좋은 병원 환경과 환자 중심의 편의성 제공과 함께 의료질의 효율성을 증대시켜, 더 좋은 병원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Q. 일하면서 가장 보람되거나,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대의로서는 일산백병원 개원 멤버로서 현재의 일산백병원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 할 수 있었던 기회를 주어진 것에 대한 보람이 큽니다. 

 

업무적인 측면에서 보면, 핵의학센터의 방사선 안전관리업무가 기억에 남습니다. 핵의학센터는 매년 원자력안전기술원의 현장 정기검사가 실시됩니다. 1999년 본원 개원 초 핵의학 시설검사 합격을 시작으로 2001년 정기검사부터 현재까지 방사선 안전관리 실적 우수기관으로 선정, 인센티브가 주어져 격년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우수기관이 아니면, 매년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  

 

또 영상의학과 부서장 재임 시 2014년 12월, 2주기 의료기관 인증평가와 2018년 12월, 3주기 의료기관 인증평가를 받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나름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주말에도 출근해 준비하던 기억, 그래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던 일들이 보람 있었습니다. 그 밖에 부서장 재임 중 우리 부서의 구성원들이 원내 QI 경진대회 대상과 감염관리실 주관 감염 콘테스트 경진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을 때, 가장 보람이 있었습니다.

 

윤종일 차장이 8월 13일 정년퇴임을 맞아, 병원 전체 연석회의에서 정년퇴임 인사말을 하고 있다. 

 

힘들었던 점도 보람됐던 업무와 비슷하네요. 일산백병원에 개원 멤버로 차출되어 경험해 보지 못했던 핵의학센터 총괄 책임자로 일했을 때 참 힘들었습니다. 업무 개시를 위한 준비과정부터, 2008년 양전자 단층촬영장비 도입, 2012년 갑상선암 요오드 치료병실 설치 과정들과 시행 전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생겼던 일들이 지금 생각해도 좀 힘들었습니다. 또 2014년 전임 영상의학과 실장님 정년 퇴임으로 인한 예상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영상의학과 부서장을 맡았을 때 심적인 부담이 컸지만, 주위에 많은 동료 선·후배 도움으로 큰 무리 없이 부서장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윤종일 차장이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곳, 핵의학실

 

Q. 일산백병원을 떠나면서, 인생선배·직장선배로서 후배들이나 백병원 가족들에게 남기실 말씀은?

 

진료지원부서의 영상의학과 방사선사로서 가장 기본은 환자에게 친절의 서비스와 편안함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 드리고 싶습니다. 조직에서 인정받는 구성원이 되는 것이 직장생활의 초석이라고 생각하며. 남을 배려해 주고 모든 업무에 솔선수범하고 책임을 다하는 근무자세가 본인은 물론 조직의 발전을 도모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항상 접하는 환경이 병원이고 주변을 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고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건강이라는 진리를 같이 인식하고 공유하며, 모두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Q. 인생 후반전이 이제 시작됩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세계적인 코로나 펜더믹으로 퇴직 후, 해외여행을 계획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일단 좀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낼까 합니다. 기회가 되고, 힘이 닫는다면 평소 개인적인 좌우명인 성실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그간 경험과 전문성을 발휘해, 규모가 작은 병원에서 일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정리),사진: 일산백병원 홍보실 송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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